율법이라는 그물, 생명이라는 자유 (요한복음 5장)
율법이라는 그물, 생명이라는 자유
요한복음 5장 묵상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가 된 병자 한 사람이 있었다. (요한복음 5:5, 새번역)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나를 낫게 해주신 분이 나더러,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하셨소." (요한복음 5:11, 새번역)
그 뒤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 (요한복음 5:14, 새번역)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모세가 나를 두고 썼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46, 새번역)
1. 희망을 포기한 자리에 던져진 질문
서른여덟 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마비시킨 시간의 무게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 수많은 절망이 모여 강을 이루는 그곳에 희망마저 말라버린 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연못의 물이 움직여도 먼저 들어갈 힘도, 넣어줄 사람도, 심지어 낫고자 하는 열망마저도 희미해졌을 것입니다. 그 깊은 체념의 침묵을 깨고 예수께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지극히 이상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가 낫고 싶으냐?"
이는 그의 상태를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꺼져버린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피는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모두가 그의 병을 바라볼 때, 예수님은 그의 존재 자체를 향해 말을 건네신 것입니다. 마침내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그것은 단순히 육체를 일으키는 치유를 넘어 그를 옭아매던 운명과 절망의 자리를 걷어내고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살라는 창조적 선포였습니다.
2. 생명의 권위, 율법의 그물
한 사람의 인생이 회복된 감격적인 현장은 곧 차가운 율법 논쟁의 장으로 변질됩니다. 유대인들의 눈에는 38년 만에 걷게 된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범법자'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율법을 인간을 옭아매는 촘촘한 '그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본래 생명을 보호하고 참된 안식을 주기 위해 주어진 법이 도리어 생명을 억압하고 기쁨을 정죄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이 율법의 그물 앞에서 병 나은 사람의 대답은 단순하지만 모든 것의 핵심을 찌릅니다. "나를 낫게 해주신 분이 나더러... 하셨소." 그는 율법 조항의 권위 대신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분의 권위를 내세웁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5장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문자에 갇힌 죽은 규율이 더 높은가, 아니면 지금 여기서 생명을 창조하는 살아있는 말씀이 더 높은가? 예수가 보여주신 참된 안식은 '자리를 들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온갖 그물들의 무력함을 폭로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실재 앞에서 인간이 만든 규율의 허상들은 힘을 잃어야 합니다.
3. 고발하는 율법, 초대하는 은혜
예수님은 성전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 인간의 힘으로는 누구도 다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기에, 이 말씀은 또 다른 율법의 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인간의 결단을 요구하는 명령이기 이전에 예수님 자신의 능력과 정체성에 대한 '자기 선언'입니다. "너의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으니, 이제부터는 죄를 이기는 나에게 너의 삶을 온전히 연결하여라. 나를 떠나는 것이 38년의 질병보다 '더 나쁜 일'이다." 이것은 정죄가 아닌, 생명의 근원이신 당신 안으로 들어오라는 은혜로운 초대입니다. 그것은 38년을 병자로 살게 하는 죄의 힘을 내가 이긴다는 선언이며, 그런 올가미에서 건져내겠다는 예수님의 선포입니다.
이 초대를 거부한 이들에게 예수님은 가장 역설적인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들을 고발하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그들이 평생 희망을 걸어온 '모세'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이라는 이정표를 끌어안고 소중히 여겼지만, 정작 그 이정표가 평생 가리키고 있던 목적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기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신앙의 근거로 삼았던 바로 그 율법이 그들의 불신을 증언하는 가장 강력한 고발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는 그들도 이길 것이고 건져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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