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서막과 믿음의 심연: 표징, 그 너머를 보라 (요한복음 2장)
영광의 서막과 믿음의 심연: 표징, 그 너머를 보라
요한복음 2장 묵상
예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요한복음 2:11, 새번역)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요한복음 2:18-19, 21-22, 새번역)
예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에, 많은 사람이 그가 행하시는 표징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알고 계시므로, 그들에게 몸을 맡기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의 증언도 필요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까지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요한복음 2:23-25, 새번역)
1. 첫 번째 표징: 낡은 시대를 넘어선 새 포도주
1장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으로 새로운 창조의 서곡을 연 저자는, 2장에서 그 새 창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무대는 갈릴리 가나의 한 평범한 혼인 잔치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절망의 순간에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정결 예법에 따라 놓여 있던 여섯 개의 돌항아리, 즉 낡은 율법과 제의적 질서를 상징하는 그릇에 물을 채우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물을 최상의 포도주로 바꾸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닙니다. 이것은 '표징(Sēmeion)'입니다. 낡고 형식적인 종교의 시대(물)가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어지는 새 시대의 충만한 기쁨과 생명(포도주)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장엄한 선포입니다. 이 첫 표징을 통해 예수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제자들은 그 영광을 보고 그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표징은 이처럼 믿음으로 가는 하나의 문이 될 수 있습니다.
2. 궁극의 표징: 무너질 성전과 세워질 성전
가나의 변방에서 예루살렘의 중심으로 무대를 옮긴 예수는 이제 보다 근본적인 표징을 제시합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내쫓으신 그에게 유대인들이 권위의 '표징'을 요구하자, 그는 대답합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사람들은 돌로 지은 건물 성전을 떠올렸지만, 예수는 자기 몸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요한복음 편집자는 복음서 전체를 읽는 위대한 열쇠, 즉 '부활의 해석학'을 우리에게 건네줍니다. 22절의 각주와도 같은 구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그가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예수의 모든 말씀과 표징의 진정한 의미는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빛 아래에서만 온전히 해독됩니다. 예수 자신이 바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새로운 성전이며, 그의 죽음과 부활이야말로 인류 구원을 위한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표징'임을 저자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3. 믿음의 역설: 표징을 보는 믿음, 그 심연을 아는 예수
이야기는 다시 유월절의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여러 표징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믿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놀라운 부흥의 장면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구절에서 저자는 찬물을 끼얹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몸을 맡기지 않으셨다."
이 지점에서 요한은 '믿음'이라는 주제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단순히 '참된 믿음'과 '거짓 믿음'을 구분하는 것을 넘어 인간 믿음 자체의 본질적 허무함과 불안정성을 폭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이 가나에서 예수의 '영광'을 보고 시작한 인격적 신뢰의 여정조차도,결국 부활의 빛 아래에서야 비로소 완성될 미완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물며 경이로운 '현상'에만 감탄하며 따른 예루살렘 군중의 믿음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의 믿음은 먹고 나면 다시 배가 고파지는 빵과 같고, 마시고 나면 다시 갈증을 느끼게 되는 물과 같습니다. 그것은 지속성이 없으며, 불순물이 섞인 금일 뿐입니다. 예수는 그들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십니다. 그들이 표징의 껍데기에만 열광할 뿐, 그 표징이 가리키는 자기 자신, 즉 '생명의 빵'이요 '영원한 포도주'이신 예수께는 이르지 못했음을 아셨던 것입니다. 저자는 "그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까지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라는 선언 속에 인간 믿음의 연약함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의 통찰과 자신의 신학적 해석을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4. 주권자 예수: 인간의 믿음에 의존하지 않는 영광
결국 요한복음 2장은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허무하고 변덕스러운지를 폭로함과 동시에 그 믿음과 상관없이 스스로 빛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적 영광을 선포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믿음을 구걸하여 당신의 정체성을 증명받으려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반응에 의존하지 않고,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목적한 바를 이루십니다.
그의 표징은 우리를 설득하기 위한 '쇼'가 아니라, 새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그 선언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과연 표징 자체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표징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질문받게 됩니다. 저자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예수의 표징은 당신의 믿음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진리다. 그는 당신의 마음속까지 다 아신다. 그러니 이제 얄팍한 믿음을 넘어, 부활의 빛 가운데 그분의 말씀과 인격 안으로 들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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