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사랑, 가장 낮은 섬김(요한복음 13장)
가장 높은 사랑, 가장 낮은 섬김
요한복음 13장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복음 13:1, 새번역)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요한복음 13:14,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 13:34, 새번역)
1. 십자가, 사랑의 자연스러운 발현
요한복음의 편집자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장엄한 선포로 예수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끝까지(eis telos)'라는 말은 시간의 종결점을 넘어, 사랑의 완전한 성취와 그 본질의 극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정점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요한에게 십자가는 모든 표적이 수렴되는 지점이자, 하나님의 [[사랑의본질]]이 가장 찬란하게 드러나는 영광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종종 인간의 경험으로 십자가를 이해하며, 그것을 고통스러운 결단과 비극적인 희생의 길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기를 위해 불 속에 뛰어드는 것이 복잡한 선택의 결과가 아니듯, 본질 자체가 사랑이신 예수에게 십자가는 마지못해 지는 고난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랑의 가장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발현, 당신의 존재 자체를 남김없이 쏟아내는 신적인 행위였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이 '멈출 수 없는 사랑'의 핵심입니다.
2. 발 씻김, 가장 단순하고도 어려운 순종
그 지고한 사랑을 눈앞에 펼쳐 보이기 전, 예수님은 낮은 자리로 내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이보다 더 구체적이고 [[단순한순종]]의 요구는 없습니다. 신학적 논쟁이나 심오한 해석 이전에, 그저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기며 섬기라는 명백한 부르심입니다.
하지만 이 가장 '단순한' 행위는 우리의 교만과 자아를 무너뜨리는 가장 '어려운' 순종이기도 합니다. 주님과 스승의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종의 자리로 가신 이 행위는 세상의 모든 위계질서를 전복시키는 혁명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나의 지위, 나의 자존심, 나의 의로움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발을 닦아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수많은 신학적 혼란스러움 속에서 길을 잃을 때, 예수의 말씀은 우리를 이 단순한 [[섬김]]의 자리로 되돌아오라 명합니다.
3. '하찮은 선행', 사랑의 파동에 공명하는 삶
그렇다면 '서로 발을 씻겨주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창한 업적이나 기억될 만한 선행이 아닐지 모릅니다. 오히려 "나도 잊고 상대도 잊는 차 한 잔 나눔"과 같은 '하찮은 선행'에 그 본질이 있습니다. '선행'이라는 이름표마저 붙지 않는 사소한 행위, 나의 의로움이 개입할 틈 없이 그저 사랑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 그것이 바로 말씀의 파동에 가장 순수하게 공명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우리의 [[자기비움]]을 통해 이뤄지는 이름 없는 사랑의 실천들이 모여 세상을 향한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교리가 아니라,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우리의 사랑을 보고 우리가 주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장 높은 사랑은 이처럼 가장 낮은 섬김, 가장 사소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를 통해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