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의 열심, 양의 안식 (요한복음 10장)
목자의 열심, 양의 안식
요한복음 10장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 (요한복음 10:3, 새번역)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요한복음 10:11, 새번역)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요한복음 10:14-15, 새번역)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요한복음 10:16, 새번역)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요한복음 10:30, 새번역)
1. 판단의 안개 속에서 예수를 만나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이자 [[양의 문]]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으로 선포하십니다. 이 선언은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거부감을 주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한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참칭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직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만약 내가 그 시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이 돌을 들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인식과 판단의 안개' 속에 갇힌 [[인간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이성, 상식의 틀 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그 틀을 깨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신앙의 여정은 이처럼 나의 무지와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가진 잣대로는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음을 고백할 때, 비로소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들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2. 내 노력이 아닌, 목자의 노력으로
예수님은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깊은 [[인격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양인 우리는 어떻게 목자를 알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양의 영적인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갓난아기가 수억만 번 엄마의 음성과 심장박동을 들으며 자연스레 엄마를 알아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엄청난 노력은 양이 아니라 목자가 합니다. 우리 이름을 부르시고, 우리를 찾아오시고,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분은 목자이십니다. 우리의 '앎'은 포기하지 않으시는 목자의 그 헤아릴 수 없는 '음성의 축적'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입니다. 구원은 나의 분투와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목자의 지치지 않는 열심과 일방적인 사랑으로부터 입니다. 나의 신앙은 나의 결단 대신 그분의 [[신실]]하심이라는 반석 위에 서 있습니다.
3.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사랑
요한복음 10장의 절정은 선한 목자의 꺾이지 않는 의지에서 발견됩니다. 그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선언하시며 십자가의 사랑을 예고하십니다. 이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단지 우리 안에 있는 양들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이 말씀은 목자의 마음이 얼마나 넓고, 그의 구원 계획이 얼마나 집요하고 강력한지를 보여줍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온 산을 헤매시는 목자의 뜻을 그 누가 꺾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여전히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광야 같고, 우리는 길을 잃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연약함이 아닌 목자의 강력한 의지에 있습니다. 결국 모든 양 떼를 모아 한 분 목자 아래 두실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 안에서 우리는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립니다. 신앙은 내가 주님을 붙잡는 힘이 아니라, 결코 나를 놓지 않으시는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