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창조의 서곡: 영원한 말씀이 빛과 생명으로 오시다 (요한복음 1장 묵상)
새로운 창조의 서곡: 영원한 말씀이 빛과 생명으로 오시다
요한복음 1장 묵상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요한복음 1:1-4, 새번역)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복음 1:14, 새번역)
요한이 또 증언하여 말하였다. "나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32, 새번역)
1. 첫 창조의 메아리, 새로운 창조의 서곡
요한복음의 서두는 저자의 영혼을 압축한 장엄한 신앙고백입니다. 저자는 "태초에"라는 선언으로 독자들을 창세기 1장의 거룩한 현장으로 부릅니다. 그는 창세기의 저자와 같은 믿음의 지평에 서서 모든 시간과 역사의 시작점을 조망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익숙한 창조의 선율에 '말씀(로고스)'이라는 놀랍고 새로운 화음을 더합니다.
1절의 고백은 숨 막히는 신학적 긴장감으로 가득합니다. 저자는 '말씀'을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하며 인격적 구별을 암시하다가, 곧바로 '말씀'은 '하나님이셨다'고 선언하며 신적 본질의 동일함을 증언합니다. 이것은 아직 정돈되지 않은 표현일까요? 아니면 후대 교회가 삼위일체 교리로 정립하게 될 '구별되나 본질은 하나인' 성부와 성자의 신비를 담아내려는 영감 어린 분투일까요? 요한은 창세기의 창조 사역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그 창조의 주체가 바로 지금 자신이 증언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하며 새로운 창조의 서막을 엽니다.
2. 빛의 심화: 우주적 현상에서 내면의 생명으로
요한은 창세기의 저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빛의 실체를 더욱 세밀하고 깊이 있게 파고듭니다. 창세기의 빛이 혼돈의 세계를 밝히는 첫 피조물이자 '우주적 현상'이었다면, 요한복음의 빛은 '말씀' 안에 본래부터 내재한 '생명'에서 발원하는 '근원적 실체'입니다.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는 선언은 빛의 무대를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옮겨옵니다. 이 빛은 물리적 어둠뿐만 아니라 무지와 죄로 인한 영적 어둠을 밝히는 생명력 그 자체입니다.
이러한 빛에 대한 재정의는 14절의 성육신 선포를 위한 위대한 '전초 작업'입니다. 만약 빛이 외부적인 현상에 머물렀다면, 영원한 말씀이 유한한 육신이 되었다는 선언은 갑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빛을 '사람의 생명'과 연결함으로써 저 멀리 계신 초월적 로고스가 사실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과 연결된 분임을 미리 암시합니다. 창세기 편집자가 하늘과 땅을 큰 스케일로 연결했다면, 요한복음 편집자는 보다 촘촘하게 연결합니다. 이로써 독자들은 우주를 창조한 말씀이 우리 안에 생명의 빛으로 오시고, 마침내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 곁에 오시는 계시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3. 계시의 정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다
마침내 요한복음 서두의 모든 신학적 에너지는 14절의 폭탄선언,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구절에서 폭발합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우주적 말씀, 우리 내면의 생명이자 빛, 세례 요한이 증언했던 바로 그 참 빛이 이제 역사 속 한 인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과 얼굴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사셨다(장막을 치셨다)'는 표현은, 광야 시절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셨던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이 이제 예수라는 성전을 통해 온전히 드러났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여기에 저자는 '성령'이라는 또 하나의 핵심 요소를 더합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 위에 '머무는 것'을 봅니다. 구약의 인물들에게 일시적으로 임했던 성령과 달리 예수 위에 영구히 거하시는 성령은 그가 바로 성령의 근원이시며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 창조의 시작임을 확증합니다. 이로써 태초, 말씀, 하나님, 예수, 성령이라는 거대한 퍼즐이 완성되며, 하늘과 땅, 영원과 유한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 안에서 만나는 위대한 신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집니다. 요한의 고백은 이제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를 향한 초대가 됩니다. 그 영광을 보고, 그 은혜와 진리를 맛보라는 생명의 초대 말입니다.
4. 성경의 위대한 대칭: 시간의 짝, 내용의 짝
성경 전체를 조망할 때, 우리는 경이로운 대칭 구조를 발견합니다. 창세기 1-2장이 첫 창조와 낙원 상실로 구원사의 시간적 시작을 알린다면, 요한계시록은 새 창조와 낙원 회복으로 그 시간적 끝을 장식합니다. 이 둘은 성경이라는 거대한 서사의 시작과 끝을 받치는 장엄한 책꽂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창세기 1-2장의 진정한 내용적, 신학적 짝은 바로 요한복음 1장입니다. 창세기가 "하나님이 이르시되(말씀하시되)"라고 선포하며 창조의 '무엇(What)'과 '어떻게(How)'를 보여준다면, 요한복음 1장은 그 창조의 이면으로 우리를 데려가 그 '말씀'이 바로 '누구(Who)'이셨는지를 밝혀줍니다. 창세기가 우리에게 웅장한 창조의 그림을 보여준다면, 요한복음은 그 그림을 그리신 화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소개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첫 창조의 주인이신 그분이 이제 그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영적인 '새로운 창조'를 위해 오셨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장은 단순히 한 복음서의 서론이 아니라, 성경 전체, 특히 창세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위대한 해설서이자 진정한 시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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