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장(#2) : 서머나와 버가모

요한계시록 2장(#2) <서머나와 버가모>

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을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주 전시장에 엄청난 기둥으로 된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국주의 시대에 무력으로 헐값에 엄청난 문화재를 약탈한 독일을 욕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그곳이 계시록에 나오는 버가모인 줄 알고 아쉬워한 적이 있습니다.

14-15절은 버가모교회에 대한 책망입니다. 당시 로마의 제우스 신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신전, 로마의 여신의 신전이 있는 종교의 중심지와 같았던 도시가 버가모입니다. 에베소나 서머나에 비해 경제, 문화적인 중요성은 떨어져도 종교와 정치에서는 가장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버가모의 정치인들은 합법적으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도시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곧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며 그 신앙을 지키고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그들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맞서 순교로 신앙을 지켰습니다(13). 그러나 알지 못하는 중에 스며드는 우상숭배와 음행, 혼합주의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고 합니다. 무의식중에 듣고 보고 읽는 것들로 우리 마음과 영은 물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고 듣고 읽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왜 경건생활을 하고 금욕생활을 하는지 이해가 갑니다. 그것 자체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예수와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기는 하기 때문입니다.

9절은 서머나교회에 대한 칭찬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이겨내는 모습을 칭찬하시며 실상은 부요하다고 하십니다.

이들의 궁핍은 실제적인 궁핍입니다. 3일만 굶으면 담 안 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궁핍을 견디어 내는 것, 특히 가장으로 혹은 부모로 가족들이 자녀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견디어낸다는 것은 자신의 살을 뜯어내는 것 같은 고통일 것입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소설로 쓴 <로마에서 보낸 일주일>을 보면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직업공동체에서 쫓겨나고 가정을 돌볼 수 없는 궁핍한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모습을 봅니다(p.50-51). 그것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었습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오늘과는 상이하게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 가운데 계신 분이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두려움과 궁핍과 고난에서 이끌어 내주실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생명의 관을 주고 이름이 적힌 약속의 흰 돌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과 오늘 그리스도인인 나를 비교해 보며 뉘우치고 회개합니다. 이렇게 평안한 중에 불평불만이 차고 넘침을 회개하고, 예수의 새 계명을 이행하지 못함을 회개합니다.

♧ 자비롭고 정의로우신 하나님, 스스로를 잘 살피고 주의 뒤를 묵묵히 따르게 하소서, 성령님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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