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복음의 자유

칼 바르트의 글을 읽는데 소름이 돋는다.
바르트는 1933-07-22 독일 개신교회 Bonn 노회장 선출을 앞두고(노회 현장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맞을 것이다) <복음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연설한다. 당시 독일 교회는 1931년 히틀러가 수상이 되고 온 교회가 그쪽으로 달라 붙는 상황이었다. 그런 격랑 속에서 바르트 혼자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은 조금이라도 크게 들리게 하려고 동그랗게 말아서 입에 대고 교회가 이러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르트의 연설이 먹혔을까? 아니다. 친히틀러 쪽 사람이 노회장이 됐다. 그렇다, 교회가 정치와 싸워 이긴 적은 없다. 손을 잡거나 매를 맞거나 둘 중 하나였지. 마이너리티 교회들은 이듬해 고백 교회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고백 교회가 기치를 드는 그 총회 현장에서 그 유명한 바르멘 신학 선언이 선포된 것이다. 이러니 바르트가 독일에서 쫓겨날 수밖에. 독일 사람이었다면 본회퍼와 감방 동기가 됐을 것이고. 

어쨌든 바르트의 이 글은 참말로 명문이다. 바르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가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는 대로 투표하십시오." 
바르트가 자유 자유 하니까 자유롭게 투표한 거다 ㅠㅠ
그런 다음 찬송을 부르고 마쳤단다. 
근데 찾아보니 찬송 가사가 루터 것이란다. 하~~ 루터가 들었으면 미쳐부럿것지. 예수님이야 워낙 단련되셔서 그러려니 허셨을 것이고. 
곱게 봐줘서 독일 교회가 바르트를 불렀다는 것만으로도 정상 참작을 해줘야 하나 싶다가도 겉보기에 포용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술수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혀를 찰 수밖에 없기도 허고.

마지막 단락을 보면, 바르트는 사실 알았다. 교회는 절대 고난받음의 전통을 벗어날 수 없음을. 그것이 교회가 전승한 것임을. 그래서 자신의 연설이 아무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음을. 그런 가운데 바르트는 교회가 고난받음과 함께 무조건적으로 전승한 것 하나를 더 소개하며 거기에 기댄다. 그는 숨어 계신 하나님을 초신(招神)하고 있다. 

Karl Barth, Für die Freiheit des Evangeliums, 
Theologische Existenz heute. Schriftenreihe, herausgegeben von Karl Barth und Ed. Thurneysen, heft 2, Chr. Kaiser Verlag München 1933.

아래는 서문과 마지막 단락이다.

서문

다음 페이지의 내용은 1933년 7월 22일, 교회 선거 전날 밤에 본에서 열린 공개 집회에서 제가 한 연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두 개의 속기록을 바탕으로 내용을 변경하지 않고 다만 인쇄를 위해 정리하며 여기저기 조금씩 보완했습니다. 이 인쇄본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저에게 편지를 보내 "오늘날의 신학적 서신”(Theologische Epistel heute : 7. 22 연설을 가리킴, 바르트가 서신과 오늘이라고 쓴 것은 당시 교회에 보내는 중요하고 긴급한 신학적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임 - 역주 )이라는 글에 대한 찬성 의사를 표현해 주신 많은 분들께 인사를 전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분들 대다수에게 개인적으로 답장을 드리지 못했지만, 저는 이 주제에 대해 많은 분들이 (저의 주장에) 동의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신문 보도에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독일 내 복음주의 교회가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가시적임을 의미합니다. 이 숨겨진 교회(ecclesia abscondita)는 제가 이 연설을 - 결코 "역사적 문서"로서가 아니라 - 세상에 공개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연설 이후 지금까지 일어난 중요한 일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의 첫 번째 글(7.22 연설 - 역주)에 대해 여러 모양으로 반대했던 여러 "독일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들의 반론과 항의가 저에게 어떤 인상도 주지 않았다는 점만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큰 권력과 많은 계략…!”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의 입장이 서 있는 발은 진흙 구덩이 속의 발일 뿐입니다!

본, 1933년 10월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오늘 여러분에게 우리 교회 전체의 이러한 갱신 가능성을 고려해 보시기를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말을 들어줄지, 사람들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본의 큰 회중 가운데 단지 작은 그룹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싸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우리의 겸손한 제안이 내일 우리가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징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도 우리를 희망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일 본의 투표 결과 이후를 전망하면 부인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내일부터 우리는 오늘날의 시대에 비해 진지함의 명성과 내용이 상당히 떨어진 교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많은 징후가 있습니다. 압도적인 다수와 특히 제국 정부에 맞서 복음의 자유를 지켜야 할 교회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싸움을 미리 하고 있으며, 내일 실제로 치러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 모임의 미약한 그룹인 우리는 내일 저녁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기뻐할 것이고 위로받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미 많은 어려운 시험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재앙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은 항상 이 교회에 모인 사람들 자신의 잘못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독일 땅에서 교회의 최근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오늘 우리가 특별히 철저한 교회의 재앙 앞에 서 있다는 전망 앞에서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자비로 우리를 그것으로부터 보호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독일 기독교인들의 승리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임한다 하더라도 - 아니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심판 속에서 우리에게 그분의 은혜를 보여주신다 하더라도 - 변함없이 남는 것이 있습니다. 오고 가는 번성하고 쇠퇴하는 교회의 인간적 형태 위에 마지막 말씀을 하시는 분이신 교회의 주님이 계십니다. 복음의 자유는 교회 안의 사람들에 의해 부인되고 짓밟힐 수 있고, 수십 수백 년 동안 교회와 함께 정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 자신이 자유로우신 것처럼 분명 자유로울 것입니다. 황폐해진 교회 안에서 여전히 주님의 교회는 숨겨진 채 살아 있을 것입니다. 제단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그리고 그분의 오심에 대한 단순하고 기쁜 이해가 있는 곳에 말입니다.

이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가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는 대로 투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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