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as Pangritz: 본회퍼 신학에서 칼 바르트(의 흔적)

> 비서를 저자에 빙의시켜 토론한 것에 대한 프로토콜을 작성하라고 지시하니 다음과 같이 썼다.


## **대화 주제**:
본회퍼는 왜 바르트의 신학을 비판했는가?

- 팡그리츠 교수님의 책 "Karl Barth in der Theologie Dietrich Bonhoeffers"를 중심으로

**대화 내용 요약:**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한 명인 칼 바르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독일의 젊은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있었죠. 본회퍼는 바르트를 향해 “계시 긍정주의자”라는 다소 생소한 비판을 던졌습니다.

쉽게 말해, "계시 긍정주의"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진리를 무조건 옳다고만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합니다. 본회퍼는 바르트가 계시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나 시대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교리적으로 접근한다고 생각했죠.

흥미로운 점은, 본회퍼가 바르트를 비판하는 지점이 당시 루터 르네상스를 주도하던 칼 홀과의 차이점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홀은 루터의 칭의론을 "의화", 즉 인간이 실제로 의롭게 되는 과정으로 해석했지만, 바르트는 "의인", 즉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에게 전가되는 법정적 선언에 더욱 집중했죠. 과연 바르트가 홀의 루터 해석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었을까요? 또, 바르트와 홀의 입장 차이 속에서 본회퍼는 어떤 신학적 접점을 찾았을까요?

본회퍼는 “비밀 규율(Arkandisziplin)”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계시의 신비를 세속적인 논리로부터 보호하고 그 의미를 올바르게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진리는 마치 웅장한 음악 작품의 "정선율(Cantus Firmus)"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이 정선율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기본 선율처럼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본회퍼는 다양한 삶의 측면들이 이 정선율과 조화를 이루면서 각자의 선율을 가지는 "대위법(Counterpoint)"처럼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속적인 가치와 문화는 기독교 신앙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풍요롭고 역동적인 삶의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죠.

본회퍼에게 "비밀 규율"은 기독교 신앙이 마치 "정선율"과 "대위법"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폴리포니(Polyphony)"를 만들어내듯 세상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들과 조화를 이루며 더욱 풍성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팡그리츠 교수는 본회퍼의 비판이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본회퍼는 자신이 알고 있던 바르트 신학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문제 제기를 했으며, 그의 비판은 당시 나치즘이라는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세상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흔적이라고 설명합니다.

본회퍼와 바르트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20세기 신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5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 4장까지는 본회퍼와 바르트의 신학적 관계를 다루었지만, 명확한 결론 없이 끝맺었다. 5장을 추가하여 분석 결과를 제시하고 본회퍼의 "계시 긍정주의" 비판이 가지는 현대적 의미를 논의해야 한다.
- 5장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
    - "계시 긍정주의" 비판에 대한 총괄적인 평가
    - "비밀 규율"의 현대적 의미
    - 본회퍼와 바르트, 그리고 현대 신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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