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당황: 당신을 섬긴다면서 당신 자리에 엉덩이 밀고 들어올 때
소크라테스: 기원전 470-399년의 그리스 철학자요 아테네 시민.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시민과 행정부의 부정 행위가 점점 더 만연해지던 시대에 살았다. 예를 들어, 기원전 404/403년에 그는 다른 네 명의 시민과 함께 무고한 사람을 체포하여 처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혼자서 이 명령을 거부했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 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전의 철학자들처럼 동료 시민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질문을 통해 청중을 선과 정의에 대한 인식으로 이끌려고 했다. 사회 정의란 무엇인가? 평화란 무엇인가? 대화의 첫 번째 단계에서 그는 자신만만한 상대방("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분명하다!")을 이끌어 그의 지식이 허위 지식임을 깨닫게 했다. 상대방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선을 알고 싶어 한다면, 소크라테스는 추가 질문을 통해 그를 선과 정의에 대한 인식으로 이끌었다. 그 과정은 상대방이 이 지식이 자신의 무의식 속에 이미 있었고 이제 소크라테스에 의해 표면으로 드러난 것처럼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선을 알고 있다면, 선을 행하는 행위가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산사(소크라테스 어머니의 직업)가 산모가 아기를 낳도록 돕듯이,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방이 새로운 지식을 낳도록 도왔다. 소크라테스의 위대한 제자인 플라톤(기원전 427-348/47년)은 이 기술을 마이우티케(조산술)라고 불렀다.
이 불편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그는 신성모독 혐의, 곧 도시의 신들을 믿지 않았으며 청소년들을 타락시켰다고 기소되었다. 첫 번째 혐의는 소크라테스 자신이 반복적으로 듣는 신성한 목소리를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목소리를 "다이모니온"(개인의 삶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인도하는 신성한 힘)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이것을 새로운 악마적 존재(신)에 대한 신앙이라 생각했다. 500명 또는 501명의 배심원들은 그에게 독미나리(독배)를 마시고 죽으라는 사형 선고를 내렸다.
* 아주 깔끔하게 잘 정리했다. "소크라테스는 선을 알고 있다면, 선을 행하는 행위가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칸트의 조상 되겠다. 이런 생각은 본의 아니게 영향력을 크게 미쳐서(끼쳐서?) 할 수 있거든?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믿는(아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잖나 라는 성구까지 오해하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믿는다고 되는 게 아닌데. 하나님 자리에 내가 쓰윽 밀고 들어가버린 거다. 하나님 당황스럽게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