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4장: 말라기서 편집자가 야훼께 내미는 카드

4장: 말라기서 편집자가 야훼께 내미는 카드

4   너희는 율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여라. 그것은 내가 호렙 산에서 내 종 모세를 시켜서, 온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이른 것이다.

5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것이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

4절은 정언명령이다. 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은 법령들과 규칙들을 제정했다. 이스라엘은 갖가지의 행위규범을 통해 정언명령의 의무를 감당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예언서들뿐만 아니라 말라기서에서 드러내는 상황은 정언명령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부를 가리킨다. 정언명령의 무능력이다.

여기서 말라기서 편집자는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절망하지 않는다. 5절은 야훼와 편집자가 이심전심으로 한 줄기의 소망을 담은 구절이다. 4절과 5절 사이는 단 한 절 차이지만 그 틈은 넓고 깊다. 쳇바퀴처럼 나선으로 달리는 그 틈은 인류 전 역사의 시간을 관통한다. 그러나 편집자는 4절을 쓰자마자 5절로 허겁지겁 내달렸다. 그만큼 편집자의 마음은 급하고 두 발을 동동 구른다. 편집자는 왜 5절을 써야만 했을까? 어째서 편집자는 엘리야 예언자를 기대할까?

편집자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의 대표인 엘리야에게서 소망을 발견하고 싶다.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이 아버지에게로.’ 야훼의 마음이 사람에게로 사람의 마음이 야훼께로 향하는 모습이야말로 4절의 구현이다. 인간은 정언명령을 무력하게 만들지만, 야훼는 인간이 제정한 각종 법규를 돌파하여 정언명령을 실현해주셔야 한다. 이것은 말라기서 편집자가 야훼께 내미는 마지막 카드이자 적나라한 인간의 자기 인식이고 진정한 회개다. 말라기 예언자가 야훼의 말씀을 받았다면, 이것은 야훼가 지나간, 그리고 지금, 그리고 오고 오는 세대에게 내미는 유일한 카드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당신 백성에게 주고 싶은 만큼 당신 백성이 마음을 당신께 주기를 바란다. 마음을 교통하고 싶은 거다. 그럴 때 허접한 율법 규정들은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다윗이 제사장만 먹도록 규정한 법을 어기고 야훼께 바친 빵을 덥석 집어먹었다. 그렇게 한 이유도 단지 배고파서였을 뿐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다윗은 죽지 않았다. 반면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던 웃사는 소들이 날뛰어 법궤를 붙들었는데도 죽었다. 사무엘하 6장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해서 진노했다고 기록했다. 어쨌든 둘 다 율법이 쳐 놓은 경계선을 밟았는데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았다. 하나님은 열길 물속보다 더 어두운 한 길 사람속을 아신다. 하나님은 살아남은 다윗에게도 비록 죽은 웃사에게도 당신의 마음이 담긴 카드를 내미신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희망의 종말론이다. 말라기서 편집자는 정언명령인 4절과 그 구현의 불가능성을 지혜롭게 내다보고 5절을 적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도 편집자의 애절함에 이심전심 하셨고, 마침내 예수님은 편집자가 고대하던 그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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