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34 군중과 나 요 19:4-6a
사순절 34
군중과 나
요 19:4-6a
4 그 때에 빌라도가 다시 바깥으로 나와서, 유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내가 그 사람을 당신들 앞에 데려 오겠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오."
5 예수가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으신 채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시오, 이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6 대제사장들과 경비병들이 예수를 보고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빌라도는 이미 예수님을 고발한 대제사장 무리에게 그분의 죄 없음을 알렸습니다(18:38). 그리고 그를 풀어달라고 말하기를 기대하며 죄수 한 명을 석방하는 유월절 관례를 말했습니다. 그때 군중은 빌라도의 기대와는 달리 바라바를 외쳤습니다. 당황한 빌라도는 다시 관저로 들어가 예수님을 채찍으로 치도록 하였습니다. 날카로운 동물의 뼈와 쇠갈고리가 붙어 있는 채찍에 맞은 예수님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이 처참하였습니다.
다시 빌라도는 무리에게 나와서 재차 예수님의 죄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제사장 무리에게로 이끌어 냈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살점은 떨어져나가고, 머리는 가시관에 눌려 피로 낭자한 몸에 자색 천을 두른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몰골이었습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왜 이런 예수님을 무리에게 보였을까요? 무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동정심이 생겨서 바라바 대신 예수님을 석방해달라고 요청할 것을 기대했을까요? 그래서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흥분한 무리를 더 흥분시켜서 예수님을 죽이라고 하는 외침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였을까요? 자신은 살려주고 싶었지만 무리가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해서 죽였다고 하며 자신은 예수님의 죽음에 책임이 없음을 보여주려고 했을까요?
어떻든 빌라도는 비겁합니다. 흥분한 무리를 이용해서 자신을 숨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무리에게 모두 떠넘기고 있습니다. 빌라도의 이 비겁하고 사악한 계획은 성공한 것 같지만 실패하였습니다. 흥분한 무리 뒤에 숨으려고 했지만 숨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무리가 그의 이름 뒤에 숨겨졌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에서 빌라도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무리의 이름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영원히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빌라도와 같이 무리 뒤에 숨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나를 숨기고 무리의 악행에 묻어 갈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선하지 않은 것임을 알면서도 무리에게 떠넘기며 나는 안 그런 척 묻어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매의 눈처럼 정확히 우리를 보십니다.
예수님은 “예 할 때 예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할 수 있는 진리에 거하는 자를 원하지 나를 숨기고 무리의 뒤에 숨는 자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 주님, 당신이 가신 것처럼 나의 십자가를 지고 할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