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7 :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1-3,5-6)
사순절 7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1-3,5-6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웠으니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예루살렘에 양들이 드나드는 문 옆에는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많은 병자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연못에 얽힌 전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천사들이 내려와 그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때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에 가셨을 때 환자들 중에 38년 된 걷지 못하는 환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환자는 묻는 말에 대답하기보다 자신이 왜 연못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며 하소연하였습니다.
불치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환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평생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병이 낫는 것 아닐까요?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요? 예수님은 이 환자가 오랫동안 걷지 못하고 있음을 아셨는데,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환자는 당연히 낫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평생 걷지를 못했으니 얼마나 걸어보고 싶겠습니까? 얼마나 뛰고 싶겠습니까? 그에게는 병을 낫고자 하는 마음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베데스다 연못에 대하여 알고 난 후 구걸을 하면서 평생 거기에 누워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누워서 다른 사람이 던져주는 동전에 의지해서 살았을 것입니다.
병이 낫는다는 것은 이런 삶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너는 새로운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느냐?”라는 질문은 아니었을까요? 걷기 시작하면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구걸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자신을 평생 돌본 부모님과 가족들을 부양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땀 흘리고 수고하여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병이 낫는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고난과 고통,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나 모세, 다윗, 엘리야, 제자들과 바울,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기쁨을 누리며 살았지만 누명을 쓰기도 했고, 오해를 받기도 했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많은 고난에 처하고 인내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제자가 되는 일은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고난도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제자가 되고 싶으냐?”
하나님, 나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