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연, 예수의 부활과 현대신학

전경연 선생님은 <예수의 부활과 현대신학>(1968)에서 1940년대부터 강연 당시인 1960년대 중후반까지의 신학이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핀다.

1940-50년대의 선두 주자로 불트만과 바르트, 1960년대는 판넨베르크와 몰트만, 그 이후로는 당시로서는 젊은 학자였던 베르톨트 클라퍼르트를 거명하며 그들의 예수 부활 견해를 소개하며 평가한다. 클라퍼르트 이후는 부활에 붙은 주제인 빈무덤, 부활체 논의를 소개한다.

역사적 사실(historisches Faktum)이냐, 제자든 누구든 그걸 바라보는 이의 해석/신앙이냐의 문제로 바르트와 불트만이 합을 주고 받았다면, 판넨베르크와 몰트만은 선배들보다 신학의 옷을 더 껴입고 부활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어차피 신학이 부활을 저 멀리 차버리지 않을 거라면 말이다. 그들은 역사도 잡고 해석도 잡으려는 꿩 먹고 알 먹고 전략을 취한다. 특히 계시는 역사에서 간접성을 띈다는 판넨베르크의 큰 그림을 공유한다. 해석자가 사람일진대 역사라는 장 밖에서 계시가 주어진다 한들 어떻게 알겠느냐고 하면서. 하지만 그들은 사람의 시간성의 한계에 무릎 꿇고 선취니 약속이니 하면서 성취와 완성을 미래로 둘 수밖에 없었다.

젊은 클라퍼르트에게도 부활은 dialektisch이다. 역사적 연구로 파악 못하는 부활이긴 하지만 역사적 사건이라는 거다.

빈무덤도 그 자체에 방점을 둘 수는 없으나 부활한 자의 현현이라는 점에서 관계가 있다고 어떻게든 연결된다.

부활체는 대체로 바울의 해석을 따른다. 소생이 아니라 낡고 죽은 몸의 변화요 좀 더 신학적 의미로는 새 창조라는 거다.

어쨌든 1940년대부터 전 선생님의 강연 시간인 1960년대까지의 부활 논의를 따라가 보니, 역사적으로 규명 불가면서 동시에 역사를 만드는 사실이란 두 축, 즉 부활 사건에 방점을 찍을 것이냐 그걸 바라보는 해석자에게 방점을 찍을 것이냐에서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결을 달리했다. 마치 예수를 두고 하나님이라고 해야 할지,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끙끙대다 vere Deus vere Homo로 타원처럼 붙여 놨듯이. 원은 원인데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

여기서 삑사리 생각:

성경이 역사적 사실 규명 문헌은 아니라는 점. 차라리 신앙고백이 더 세다는 점. 신앙고백 저수지에서 역사적 사실 규명(두 개의 큰 흐름 모두)은 성령의 배를 타지 못하면 못 건널 수도 있다는 점. 자칫하면 경건하든 소박하게 접근하든 성서를 읽는 이의 해석이 무한 루프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 부활한 예수가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고 물어올 때를 대비해 대답을 잘 준비해야 한다는 점. 이것이야 말로 쫄깃쫄깃한 신앙생활이자 고백이라는 점.

1968년에 일필휘지로 쓴 것 같은 이런 강연을 들은 신학도들은 복도 많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예수 부활 논의는 발전하지 못하고 진영 고착화. 어차피 양 진영에서 OX 퀴즈에서처럼 선 넘는 러시만 일어날 뿐. 하늘에서 번개 한 번 치면 이 논의가 정리되기는 할 텐데, 그런 적은 성서에 많이 나오고 현재의 시간에서는 잘 안 보임. 시간이 더 흘러 몇 백 년, 천 년 단위로 정리할 때 보이려나. 예수 사건 이후 2,000년 정도니까 3,000년 단위로 정리 가능할 때 쯤이면 결론이 날지도. 단, 기후 위기 사이렌 울리는 분들은 2050년 그 이상을 비관적으로 보시긴 하던데. 학습의 단계를 넘어 스스로 생각하는 AI가 답해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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